태평양 전쟁의 분수령, 과달카날
1942년 8월 7일, 남태평양의 한 작은 섬에서 거대한 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바로 과달카날 전투입니다. 일본군의 거센 저항 속에서 미 해병대가 상륙 작전을 감행했고, 이는 태평양 전쟁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전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치열했던 섬 전투에서 연합군 항공모함들은 그야말로 전황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위험천만했던 초기 상륙작전, 항모의 공중엄호가 절실했던 순간
과달카날 상륙 초기, 미군은 일본군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헨더슨 비행장'을 둘러싼 쟁탈전은 그 어떤 전투보다 치열했습니다. 이 비행장은 과달카날 섬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미군은 가까스로 비행장을 확보했지만, 일본군의 공중 공격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미 항모들은 공중 엄호와 근접 항공 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미군의 생명줄 역할을 했습니다. '와스프',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등 미 해군의 주력 항모들이 쉴 새 없이 함재기를 출격시켜 일본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지상군에 대한 지원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특히 8월 8일 사보섬 해전에서 '와스프'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나머지 항모들은 꿋꿋이 임무를 수행하며 미군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치열한 항공전, 제공권 장악을 위한 필사의 사투
과달카날 전투는 태평양 전쟁에서도 손꼽히는 치열한 항공전이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미 해군 항모들은 일본 해군 항모들과 끊임없는 공중전을 벌이며 제공권 장악을 위해 사투를 벌였습니다. 특히 '동부 솔로몬 해전'(8월 2425일)과 '산타크루즈 해전'(10월 2627일)은 이러한 항공전의 절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는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군 역시 경항모 '류조'를 잃는 등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는 미 항모 '호넷'이 침몰하고 '엔터프라이즈'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군 역시 '쇼카쿠', '즈이카쿠' 두 척의 주력 항모가 큰 피해를 입고 전선에서 이탈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미 해군 항모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일본 해군 항모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히고 과달카날 상공의 제공권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보급로 사수, '도쿄 익스프레스'를 저지하라!
과달카날 전투에서 연합군 항모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바로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야간에 구축함을 이용하여 과달카날 섬에 병력과 물자를 보급하는 '도쿄 익스프레스' 작전을 펼쳤습니다. 연합군 항모들은 함재기를 이용하여 이 '도쿄 익스프레스'를 저지하고 일본군의 보급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물론 일본군 역시 이러한 연합군 항모의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해군은 잠수함과 항공기를 동원하여 연합군 항모들을 공격했습니다. 실제로 미 해군 항모 '새러토가'는 일본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 항모들은 끊임없는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며 일본군의 보급을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이는 과달카날 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과달카날의 승리, 그리고 연합군 항모의 희생
6개월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1943년 2월, 과달카날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 승리로 연합군은 남태평양의 전략적 주도권을 장악했고, 이는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뒤집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연합군 항모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물론 과달카날 전투에서 연합군 항모들은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연합군 항모들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공중 엄호, 근접 항공 지원, 보급로 차단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달카날 전투는 연합군 항모의 뛰어난 전술적 운용 능력과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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