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지옥, 과달카날
1942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과달카날까지 집어삼켰습니다. 울창한 정글과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둘러싸인 이 섬은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곧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과달카날에 건설된 헨더슨 비행장은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이 비행장을 손에 넣는 자가 남태평양의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의 악몽, 헨더슨 비행장 폭격
일본군은 헨더슨 비행장을 함락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폭격기들은 밤낮없이 하늘을 뒤덮었고, 미군은 빗발치는 폭탄과 총알 세례 속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특히 '도쿄 익스프레스'라 불린 일본 해군의 야간 보급 작전은 미군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어둠을 틈타 고속으로 이동하는 일본 함대는 미군의 방어선을 뚫고 과달카날의 일본군에게 보급품과 병력을 실어 날랐습니다.
희망의 불씨, 미 해군의 반격
하지만 미 해군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1942년 11월 12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제3차 솔로몬 해전(과달카날 해전)은 과달카날 전역의 향방을 가른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미 해군은 강력한 화력을 앞세워 일본 해군을 격파했고, '도쿄 익스프레스'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해전에서 일본은 전함 2척과 순양함 4척, 구축함 11척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고립과 절망, 포위된 일본군
제3차 솔로몬 해전 이후 일본군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보급로가 끊긴 일본군은 식량과 의약품 부족에 시달렸고, 미군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미군의 폭격 속에서 일본군의 사기는 곤두박질쳤습니다.
'굶주림의 행진', 처절한 패배의 서막
결국 1943년 2월,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일본군은 미군의 눈을 피해 험준한 정글을 통과하는 '굶주림의 행진'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미군의 공격 속에서 살아남은 일본군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과달카날 전투는 일본군에게는 '아틀리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참혹한 패배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은 약 2만 명의 병력을 잃었고, 남태평양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과달카날은 일본군에게 '지옥의 섬', '굶주림의 섬'으로 기억되며, 전쟁의 광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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